잃어버린 길에서 다시 길을 찾아가는 4인의 작가

제주에 살고 있다면, 혹은 지금 제주를 여행중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전시를 소개한다. 프로젝트팀 '은꿩의 다리'로 꾸려진 <길을 잃다-작은 숨을 쉬다> 는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제주가 고향은 아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 순례자처럼 잠시 여행하는 사람, 그리고 한라산 깊은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싶은 사람. 이들에게 펼쳐지는 제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지등대 복합문화공간
산지등대 복합문화공간

정소진, 백승주, 남영인 그리고 KL&Julie 4인의 작가들은 작년 무렵부터 제주에서 우연히 함께하며 팀을 꾸리고 온/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전시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각자 길을 잃은 순간을 상정하고 제주를 네 개의 공간 속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 공간을 다시 바라본다. 누군가에게는 일탈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공간, 누구에게는 치유의 공간, 삶의 전환점이 되는 어떤 지점, 또는 UFO처럼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이들은 길을 잃어버린 그 시점에 귀기울인다. 그 때 찾아오는 불안이나 당혹감, 혼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그 순간, 그 공간에서의 감정과 사건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각자의 시도를 '잃어버린 길', '미확인된 비행길'에 대유하여 풀어나간다. 

정소진, 기록022 제주목관아_용담, 종이에 잉크, 29x21cm, 2022
정소진, 기록022 제주목관아_용담, 종이에 잉크, 29x21cm, 2022

『…드로잉은 산책 같다. …삶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눈빛에 늘 다정한 웃음 지어주기 위해... 다시 숲을 본다. …내가 가진 작은 조각들… 숲이 커질수록 나도 선명해졌다. (작가노트 중)』 한라산 깊은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는 정소진에게 제주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싶은' 능동의 지점에 있다.  자신만의 식물도감을 일기처럼 그리고 써 내려가는 정소진에게  작업은 일종의 수행이다.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파편화된 식물 도형 조각을 재구성하며 겹겹이 쌓아 그만의 숲을 만들어 간다. 

정소진, 기록, printing edition, 25x18cm(each), 2022
정소진, 기록, printing edition, 25x18cm(each), 2022

백승주 작가에게 제주는 순례자의 길이다. 오래 여행중인 그는 제주에 있었던 사람, 머물다 가는 사람, 그리고 지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제주를 느끼는 인식과 감정은 모두 개별적이며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 모두에게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며 향수하는 대상이자 위로 받는 공간일 것이다. 작가는 그곳에서 늘 곁에 있어 부재를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다. 그것은 마른 풀 한줄기 같은 연약한 생명체 일 수도 있고, 일상에서 무감동하게 대하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다. 한지에 먹, 목탄을 사용한 그의 작업을 마주할 때 사소하지만 고요하고 단단한 힘을 볼 수 있다. 

백승주, 바람 기억 2, 한지에 먹, 목탄, 70x90cm, 2022
백승주, 바람 기억 2, 한지에 먹, 목탄, 70x90cm, 2022
백승주, 설치전경
백승주, 설치전경

제주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남영인 작가는 숨차게 달려온 길을 벗어나 새로운 균형과 전환점을 찾고싶어한다. 그는 제주에서 또 다른 길을 찾기보다는 숨을 고르고 자신 앞의 작은 행복들을 느끼고싶어한다. 실, 파스텔, 세라믹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그의 작업은 쾌활하고 즐겁다. 찌들어가는 일상을 무찌르는 무기처럼 즐거운 동화 속 주인공을 만들며 신세계를 그려낸다. 작가의 고백에서 확인하듯 그의 유쾌함은 역설적이게도 불안과 외로움을 치유하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개워내도 다 떨쳐낼수 없는… 불안, 외로움… 두려움의 크기… 때론 더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작가노트 중)』 

남영인, 지구위에서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세라믹, 21X30X7cm, 2022
남영인, 지구위에서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세라믹, 21X30X7cm, 2022
남영인, 설치전경
남영인, 설치전경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긴 시간 고향을 떠나있었던 작가 KL&Julie에게 제주는 UFO, 여전히 미확인된 그 무엇이라 한다. 이제는 제주 사람도 서울 사람도 아니어서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단다. 오랜 시간 작업을 중단했던 작가는 기존의 재료와 매체를 놓고 캔버스와 물감을 집어들었다. 그의 작업은 사적 기억과 제주의 풍경, 특정 사건을 연상시키는 모티브가 뒤얽혀있다. 

KL&Julie, 푸른 베개,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70x76cm, 2022
KL&Julie, 푸른 베개,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70x76cm, 2022

조동익의 음반 '푸른 베개'. 무의미한듯 느리고 단순한 음악의 반복속에서 <푸른 베게>를 작업하는 동안 작가는 제주 사람이 모두 길을 잃어버린 그날(제주 4.3사건)을 떠올렸다고 한다. 전시장 한 켠에는 보는 순간 세월호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영상설치작업 <매일 비내리는 날>이 자리한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종이배가 물 속에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배의 일부가 잠식되며 떨어져나가는 광경은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그 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가슴 먹먹해지는 현실 속 사건을 암시하는 작업들이지만 작가는 이를 결핍과 비정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담담하게 읖조리듯 보여준다. 

KL&Julie, 매일 비 내리는 날, 단채널 영상, 11분 57초, 2022
KL&Julie, 매일 비 내리는 날, 단채널 영상, 11분 57초, 2022

KL&Julie는 남아있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걸음을 딛는 존재들을 이야기한다. 그의 페인팅 작업도 그러하다. 산방산과 동백꽃을 그린 작업들은 보이는 것, 형상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 자신의 감정의 본질을 담은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자유로운 붓질은 때로는 대담함으로 또 어느 곳에서는 직관적인 해방감을 드러내며 작가의 독특한 회화적 형식을 보여준다. 

KL&Julie, 붉은 마음, 캔버스에 유채, 46X38cm, 2022(위), 피어나는 마음,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5x80cm, 2022(아래)
KL&Julie, 붉은 마음, 캔버스에 유채, 46X38cm, 2022(위), 피어나는 마음,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5x80cm, 2022(아래)
공간 물결_SPACE WAVE
공간 물결_SPACE WAVE

길을 잃은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동안 살아 온, 그리고 지금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새로운 방향과 속도를 찾아가는 4인 의 작가들. <길을 잃다_작은 숨을 쉬다>에서 결핍과 상실을 넘어 길을 잃어야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의 지점에 대해 말을 건내는 이들이 각자 설정한 방향과 속도, 그리고 독특한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간 : 2022년 6월 1일 (수) _ 2022년 6월 30일 (목)
*참여작가 : 정소진, 백승주, 남영인, KL&Julie
*기획  : 프로젝트팀 ‘은꿩의다리’ (요니니, 미인형, 정소녀, 바짠)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 관람시간 9:00am – 7:30pm  무휴, 관람료 없음
*전시장소 : 공간 물결  SPACE_WAVES (산지등대 복합문화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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