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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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이론에서 현실주의 패러다임은 대략 3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1세대는 한스 모겐소로 대표되는 고전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 모겐소는 국제정치를 권력 투쟁의 정치(power politics, struggle for power)라는 관점에서 본다. 그의 국제정치이론은 인간 본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시작되었으며, 국제정치 역시 본성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집합체로서의 국가 사이의 권력 투쟁과 생존주의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모겐소에게 있어서 전쟁 발생의 원인을 찾는다면 불완전한 인간성에서 유래할 수밖에 없다.

2세대는 왈츠(Kenneth Neal Waltz)로 대표되는 신현실주의다. 핵심적인 개념은 무정부 상태(anarchy). 즉 국내 정부와 같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을 담당할 중앙정부가 부재하고, 힘의 위계질서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모겐소와 같은 전통적 현실주의자에게 있어 무정부 상태란 일반적인 조건이나, 왈츠와 같은 신현실주의자에게는 무정부 상태는 독특하게 구별되는 국제체제의 구조(distinct structure). 전쟁의 원인을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에서 파악한다. 현재 국제정치이론의 현실주의 패러다임은 왈츠 이론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세대의 대표적 주자인 왈츠는  2차대전 6·25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가 1959년에 쓴   인간, 국가,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은 국제정치학의 기본 교과서가 되었다. 현재 국제정치 분석의 주요 패러다임인 신현실주의또는 구조적 현실주의의 근간을 이룬 책으로서, 정치학 연구자들에게는 필독서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왜 전쟁은 일어나는가? 라는 국제정치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왈츠는 서구철학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루소, 칸트, 스피노자, 헤겔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전쟁관과 평화관을 비교 분석하여, 이들을 전쟁의 원인에 대한 시각에 따라, 각각 인간의 본성’, ‘국가의 내부구조’, ‘국제체제라는 세 층위로 나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는 국가들의 경향은 특정 국가의 내부 형태의 속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 국가들로 이루어진 무정부 상태에서 비롯된다. 왈츠는 강대국을 현재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어적 지위 유지자로 가정했다. 그래서 왈츠의 이론을 방어적 현실주의(Defensive realism)라 부른다.

3세대 대표적 인물로는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왈츠가 제시한 무정부 상태에 대한 개념을 달리한다. 왈츠의 무정부 상태는 혼란(chaos)하거나, 무질서(disorder)한 상태가 아니다. 왈츠는 체제의 측면에서 국가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단위체가 존재하지 않고, 위계질서가 없다는 사실만을 언급한다. 반면 미어샤이머가 가정한 무정부 상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모든 국가는 자국 안보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본다. 이처럼 위험한 국제적 무정부 상태를 상정하는 이론을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라고 부른다. 무정부 상태의 국제정치에서는 밤비(새끼사슴)보다 고질라가 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국제적 무정부 상태는 다음의 특성을 띤다. 첫째, 국가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단위가 존재하지 않으며, 각국은 긴급 상황에서 다른 단위체에 호소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처리하는 자조의 원칙에 따른다. 둘째, 모든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두려워하며, 이러한 공포심(fear)은 국가 행동을 결정한다. 셋째, 주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다른 어느 국가에 비해서도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하며, 따라서 안보 극대화를 위해 상대적 힘을 극대화(power maximization)하려고 한다. 자조의 원칙에 따라야 하는 국제적 무정부 상태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강력한 힘을 보유한 패권국(hegemon)이 되는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시카고 대학교수며,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명저인 강대국의 국제정치의 비극(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도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그는 소련 해체 이후 냉전의 종식으로 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없는 세계, 세력균형과 같은 개념이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에 반박하였다. 왜냐하면 국제체제를 구성하는 강대국들은 상대방을 서로 두려워하며 그 결과 권력을 위한 경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대국들의 목표는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는 것만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힘은 안전을 보장한다. 막강한 힘은 안보를 위한 확실한 보장이 된다. 이 같은 동기로 강대국들은 상대방보다 우월한 위치를 다투기에 운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극적 상황이다. 미어샤이머에 의하면 이러한 비극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21세기에도 전쟁과 폭력은 과거처럼 잘 변하지 않는 국제정치의 모습이라 예견한다. 특히 미어샤이머는 강대국들이 세계 권력 구조 내에서 자신 힘의 비중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별히 강력한 국가가 포함된 다극 체제가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체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전부터 그러했듯이, 한국의 매체는 지나치게 서구의 논조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즉 만악의 근원을 러시아로 본다. 러시아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이유 없이 침공했고, 푸틴의 야망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는 2차대전의 원인을 히틀러의 인간성에서 찾듯이, 푸틴의 인간성에서 찾는 것과 같다. 물론 필자는 이글에서 푸틴을 비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는 분명히 우크라이나인들의 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피를 묻힌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쟁의 충분한 이유일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지 이미 6개월이 넘었다. 대체로 한국의 언론은 미국언론의 논조를 추종하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이견도 존재한다. 그중 한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위에서 장황하게 언급한 미어샤이머 교수다. 요즘 그는 99세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더불어 미국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들의 분석이 마치 푸틴을 위한 변론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은 세계 질서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대국 간 핵 게임이 일어날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전쟁이 확대되면 전 지구적 재난을 일으킬 가능성마저 남아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층의 재난이다. 만약 이 재난이 장차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그야말로 이 전쟁이 가져온 결과는 재앙적일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이런 국면에 빠지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미국이 그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어샤이머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이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에 가깝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실행한 외교정책은 러시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생존 위협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에 가입시키고자 하는 집착이 결국 러시아 변경 지역에 놓인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최전선으로 변하게 했다. 여기에 더하여 바이든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놓인 모순을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실제로 2021년 미국은 다시 한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승낙했다. 이에 대한 푸틴의 대응은 2022224일 우크라이나 침략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작전으로는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 왜냐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핵무기라는 비대칭적 군사적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안전보장을 원하기 때문에 전쟁 종결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협상으로만 종결될 수 있다. 외교는 정치적 현상을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는 일이다. 즉 타국의 시각에서 보아야 대책이 생긴다. 당분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는 평화협상의 기회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전쟁의 전철을 밟게 될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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