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UN
사진=UN

 

2000년 푸틴이 집권한 이후부터 20142월 우크라이나 첫 위기가 일어나기까지, 푸틴이 제국주의적 야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한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상 2008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거행된 나토 정상회의에 오히려 푸틴은 귀빈으로 초청되었다. 당시 나토(NATO)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야)가 나토의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푸틴은 이 입장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미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왜냐면 미국이 보기에 러시아의 국력은 과거와 달리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라, 나토의 동쪽으로의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마치 1999년과 2004년 나토가 동쪽으로 확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국력으로서는 당해낼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따라서 20142월 이전까지만 해도, 나토의 동쪽 확장은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동유럽으로 확장하는 것이었고, 전체 유럽대륙을 서부 유럽처럼 본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군사적 수준은 낮았으며, 모스크바 역시 동유럽에서 진행되는 부흥주의 정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당시 주모스크바 미국 대사 맥폴(Michael McFaul)이 지적한 대로, 2014년 푸틴의 크리미아 점령은 결코 2014년 이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는 친러파 우크라이나 지도자를 뒤엎은 정변에 대한 하나의 충동이자 저항이었다. 20142월 푸틴이 크리미아를 점령하자, 이때부터 미국과 그 동맹은 비로소 푸틴을 제국주의 야심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푸틴을 매우 위험한 인물로, 지도자로 아울러 러시아를 반드시 억제해야 할 군사적 위협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우크라이나 위기 폭발의 책임을 푸틴에게 넘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는 이미 전면적인 전쟁으로 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원은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에 있었다. 즉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최전선으로 만든 것이 오늘의 화근이었다. 역대 미국의 안보 전략가들은 특히 키신저, 브레진스키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을 세밀히 살필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를 무시하였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나토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고, 둘째, 친서방의 자유민주국가로 변모시키고, 셋째,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이 계획은 20084월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 거행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유럽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향후 나토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를 결정했다. 러시아는 이를 생존 위협으로 보고, 즉각 분노의 대응을 내놓았다. 푸틴은 엄중하게 경고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오직 크리미아와 동부 지구를 잃는 상황에서만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는 장차 분열해서 와해하고 말 것이라 경고했다. 푸틴은 이미 2008년에 이런 경고를 한 것이다.

윌리엄 번스(William Joseph Burns)는 현재 미국의 중앙정보국 국장이다. 그러나 그는 2008년 당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거행한 나토 정상회의 기간,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였다. 그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 라이스에게 러시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아주 간결하게 보고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엘리트 계층(푸틴을 포함하여)의 눈에는 레드라인을 넘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 이익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 아니라고 말하는 러시아인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더구나 나토의 우크라이나 가입은 러시아가 이를 자국에 대한 전략적 선전포고로 여겨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고,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심각한 긴장 상태로 진입할 것이며, 이는 러시아가 크리미아와 우크라이나 동부에 간섭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물론 당시 미국의 정책 결정자 중,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이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비단 번즈 한 사람만이 아니다. 사실상,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푸틴을 격노하게 할 의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모스크바가 그어 놓은 마지노선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프랑스와 독일을 압박하여, 공개성명에 동의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나토에 가입할 것이라 선포했다. 예상한 대로, 미국이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한 시도가 결국 20088월 조지아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야기했다.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4개월 뒤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은 계속 이 계획을 추진하였고,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보루로 변하도록 힘썼다. 이는 또 20142월 중대한 위기를 일으켰다. 당시 미국이 지지하는 민중봉기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다. 결국 친러파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대신 친미파 총리 아르셰니 야체뉴크가 야누코비치의 자리를 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중의 크리미아를 탈취했고, 더구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열세력을 지원하여, 우크라이나 정부 간 내전을 일으키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 사건은 나토가 기존의 전략을 신속하게 집행하게 했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빨리 가입하도록 진일보한 조치를 해 나갔다. 미국과 나토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군대를 훈련 시키기 시작했고, 이후 8년 간 매년 평균 1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이 훈련받았다. 교관단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미국과 영국의 베테랑으로 구성됐다. 201712월 트럼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어성 무기도 제공했다. 다른 나토 회원국도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운송했다. 우크라이나 군대도 나토 부대의 연합군사훈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217월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공동으로 해풍 2021(Operation Sea Breez) 연습을 했고, 이는 처음으로 흑해에서 거행된 해군 군사훈련으로서 31개 국가의 해군이 이 훈련에 참여했다. 이는 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렇게 잘 대응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크라이나 군사 성공의 비밀은 나토가 다년간 실시한 훈련 탓이다. 사실 나토는 8년 전부터 전쟁을 준비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나토 가입에 대한 최종 결심은 최근에서야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93월 젤런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협력으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1년 초에 젤런스키는 방향을 틀었다. 나토의 확장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에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친러시아 방송국을 폐쇄하고 푸틴의 친구를 반역죄로 기소했는데, 이는 모스크바를 화나게 했다.

 

20211월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위해 노력했고, 러시아에 대해서도 매파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예상했던 대로 2021614일 나토 브뤼셀에서 거행된 연도 정상회의에서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내린 결정을 재천명했다.

202191일 젤렌스키는 백악관을 방문했다. 20211110일에는 미국의 국무장관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사이에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헌장에 서명했다. 이 문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미국 간 전략파트너 관계를 위해 해야 할 승낙을 천명했다. 아울러 미국은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 선언의 승낙을 다시 언급했다. 다시 말해, 2021년 초부터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물론 나토는 자칭 방위적 성격의 동맹이며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는 푸틴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모스크바가 그어 놓은 마지막 레드라인이었다. 푸틴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2021219만 대군을 우크라이나 변경에 주둔시켰다. 목적은 바이든과 젤렌스키를 협박하여 그 노선을 변경시키고자 한 것이다. 20211217일에는 바이든과 나토에 편지를 보내 서면 보증을 요구했다. 첫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러시아 변경 부근에 공격성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다. 셋째, 1997년 이래 동유럽에 진입한 나토부대와 장비는 서유럽으로 철수한다. 사태가 긴박해 오자 푸틴은 여러 차례 공개성명을 더 발표했다. 그는 분명 나토의 우크라이나 가입을 러시아 안보의 위협으로 보았다. 20211221일 푸틴은 국방위원회에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쏟아 냈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거나 혹은 시도하거나, 혹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국경에서 수천 리 밖이 아니다. 우리의 문 앞이다. 우리는 후퇴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정말 우리가 수수방관하기를 바라는가?” 이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토로부터 오는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다. 만약 나토가 우크라이나 확장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크리미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은 우크라이나가 전무후무한 재앙을 당하는 데에 그 핵심적 작용을 했다(계속).

 

저작권자 © 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